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경 전투 (문단 편집) ==== 붕괴하는 루페이의 제3군 ==== || [[파일:external/www.webmatters.net/war_fr2ebur.gif|width=500]][br]프랑스군의 아르덴 공세의 주공루트.[* 갈색 화살표는 프랑스군이 예상한 독일군의 움직임으로 보기좋게 틀려먹었다.] || 8월 22일, 항공정찰과 장-프랑수아 소르뎃(Jean-Francois Sordet)의 기병대의 보고에 따라서 제3군과 제4군은 아르덴 전선에서 독일군의 미약한 저항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정반대로 '''10개의 군단'''을 맞이했다. 당시 제3군과 제4군은 마치 계단처럼 대각선을 그은 제차대형(echelon formation)으로 진격하고 있었는데, 이는 프랑스군이 동방과 북방으로 공세를 퍼부을 능력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각 군단의 우측면이 우익에 위치한 이웃군단에 완전히 의존한다는 약점을 소지했다. 만약에 우익의 이웃군단이 격파당할 시에 차례차례 각 군단의 측면이 노출당해 대형자체가 붕괴할 위험에 처한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프랑스군과 독일군과의 교전에서 현실화된다.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Michel-Joseph_Maunoury.jpg]][br]로렌군의 사령관[br]'''미셸 모누리'''[* 1차 [[마른 전투]]에서 제6군을 지휘한 공로로 전후 [[원수(계급)|원수]]로 추대받는다.] || 22일 5-6AM, 루페이의 제3군은 샤를 브로상(Charles Brochin)의 제5군단에게 중앙을 맡기고 극심한 안개속에서 진격했다. 롱위로 진격하던 중이었던 제5군단은 곧 강력한 방어진지를 준비한 독일 제5군휘하의 막스 폰 파베크(Max von Fabeck)의 제13군단과 격돌했다. 곧 두 군단은 적과 아군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안개 속에서 치열한 백병전을 벌였다. 루페이는 독일군의 대열을 쓸어버리기 위해 75mm 야포를 동원했지만 곧 안개가 걷히자 오히려 독일의 105mm 곡사포와 150mm 곡사포에 의해 브로상의 야포는 모조리 파괴당했다. 프랑스군은 용감한 '''[[착검돌격]]'''으로 독일군 진지를 향해 달려갔으나 기관총에 의해 큰 피해만 입었다. 이런 패배 끝에 사단중 하나는 붕괴해서 단독으로 후퇴했는데, 이는 제3군의 중앙에 큰 틈을 만들었다. 제3군 휘하의 빅토르르네 보엘레(Victor-René Boëlle)의 제4군단도 딱히 다를 바가 없었다. 제4군단은 독일 제5군과의 교전끝에 보병사단중 하나가 붕괴해 후퇴했다. 그나마 추가로 3번째 보병사단을 소지하고 있던 모리스 사하일(Maurice Sarrail)의 제6군단의 경우에는 콘라트 폰 고슬러(Konrad von Goßler)의 제6예비사단의 공세를 버텼다. 그러나 제3군단과 제4군단의 패주로 인해 사하일의 제6군단마저도 우회당하지 않기 위해 후퇴했다. 22일 1:30PM이 돼서야 모누리의 로렌군에 대해 알림받은 루페이는 베르됭 근처에 위치했던 모누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모누리는 곧바로 제54예비사단과 제67예비사단을 제3군을 향해 보냈으나,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전황에 별 도움이 못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